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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 제자이고 친구이며 이제는 동료인 사토리스튜디오의 아로마테라피스트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020-09-01 05:31:05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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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토리샘입니다!

매우 오랫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참! 저는 대학로도, 홍대 상수동도, 한성대, 우이동도 아닌 현재 대전 문화동에 있습니다.

이미 아실라나요? 싹다 정리해서 올해 연초에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오늘은 일 없이 바쁜 날이었습니다. 그와중에 문득 당신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매우 오랫만에 이메일을 보냅니다.

8월 한 달을 하안거로 쓰며, 상반기를 허망하게 보냈기에, 9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일정들을 더욱 공들여 준비 중이었어요.

하지만 오늘 결국 관여하던 센터들과 의논 끝에 연말까지의 모든 외부강의 일정들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8월 말 현재 국내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고,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은 지난 몇 년이 그러했듯 신종플루나 독감과 같은 유행성 감염병들까지 더해질거라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관계부처에서 하달된 공문들은 '일단 취소'와 '추후 상황을 봐가며'라는 단서들이 달려있지만

예견되는 상황이 분명 좋지 않으니 2020년의 남은 시간들 역시 프로그램들을 무리하게 진행치 않기로 확정,

너무나 당연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 입니다.


오전부터 이런저런 전화들이 오갔고 이젠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이제서야 문득 '다들 괜찮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외부활동뿐만 아니라 각자가 운영 중인 공방들의 사정 역시 편치않으리라 생각되는데,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사실 코로나 자체보다도 최근 뉴스들 속에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 후유증입니다.

상황이 장기화 되며 이제는 어느 정도 데이터들이 쌓여 다양한 후유증들이 보고되는데

그 중 저를 제일 긴장시키는 증세는 '후각장애 anosmia'입니다.

생존자의 대부분이 후각이나 미각이 작동하지 않는다는데,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고착화 될지는 시간이 더 지나며 차차 알아지게 될 것입니다.


향을 다루는 제 직업때문이 아니더라도

후각은 뇌기능과 직결되어 우리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줍니다.

아로마테라피스트인 제 입장에서 더더욱 이와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거듭거듭,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덕분에, 제 직업과 작업의 정체성에 대해 후각과 관련하여 새삼스레 여러 생각들을 해 볼 기회가 되어줍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래 전 봤던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2011년 개봉한 영화 [페펙트센스]가 생각났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오감을 차차 잃어가는 내용이었는데

개봉당시에는 러브라인에 맞춰 영화를 봤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본다면

감각의 소실로부터 기인하는 일상의 소실, 삶의 소실, 존재의 소실에 대해 이전보다 실감나게 주목하게 될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맡은 역활은 '요리사'였어요.

전세계에 유행병이 돌고 인간들은 미각을 제일 먼저 잃게 되는데

주인공이 '요리사'이다보니 여차저차해서 요리의 방점이 '맛'이 아닌 '식감'으로 대체되고

새로운 즐거움에 적응될 즈음, 영화 속 이야기는 또 다른 감각 상실과 그에 따른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그렇다면 아로마테라피는 어떨까요?

후각을 상실하고도 아로마테라피가 가능할까요?

맛을 대신한 식감처럼, 향을 잃어도 사람의 터치인 마사지나 피부관리 등이 있지만

그때는 더 이상 제가 제 자신을 '아로마'테라피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향을 잃었기에 나는 더 이상 향과 공명할 수 없으니

테라피스트인 내가 내 앞의 그와 그녀에게 전하는 내용물도

공명된 의식, 향의 마음, 꽃의 영혼이 아닌 물질로써의 향의 화학적 특질을 용법대로 추론하여 전달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고

'그건 더 이상 아로마테라피가 아니지'라는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테라피는 받는 사람의 오픈마인드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는 사람의 의도와 상태가 테라피에 보다 결정적입니다.

내가 주지 않은 것을 상대가 받을 순 없잖아요.


여튼 저의 장황한 이야기의 요지는,

우리 일은 향의 긍정적 작용을 다루는 일이고, 그 기반이 후각이라는 새삼스런 각성입니다.

또한 나의 후각은 견고한 것이 아닌 여러 개기와 이유로 언제든 소실될 수 있다는 현실인식입니다.


비단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삶, 인간관계도 그 기반이 우리의 기대 보다 매우 연약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 카드로 만든 집처럼 믿음직스럽지 못한 초라한 민낯을 가지고 있어요.

코로나는 질병 그 자체보다도 팬데믹으로 까발려진,

생각 보다 견고하지 않았던 우리 일상과 행복의 요소들,

위기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맨 얼굴들, 불안과 불합리, 비이성적인 미신과 오래 되고 왜곡된 믿음,

옹색하니 초라하고 천박한 인간에 대한 예의, 폭력과 앞 뒤를 가리지 못하는 괴이한 욕망, 이기심 등이

코로나 공포의 진짜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매우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더 이상 아로마테라피를 하지 않으면,

 아니 못 하게 되면 나는 이제 어떻하지?

무엇으로 먹고, 무엇으로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나?

어떻게 다시 기쁨을 만들고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나는 내 자신을 어떤 나라고 인식하게 될까?,

나를 '누구'라고 내 자신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을까?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최소한 저는 이런 질문들이 저의 피와 살이 되어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착각이었더라고요.

충분하지 못 했습니다.

진실로 제가 아로마테라피를 못할 수도 있다는, 뿐만 아니라 직업 할동이나 나의 사회생활이 멈춰질 수 있다는,

삶이 갑자기 바로 지금 끝날 수도 있다는 실존, 냉험한 현실인식이 내 세포와 마음과 정신을 적시진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닿게 됩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지혜로운 이들로부터 법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제 마음이 저절로 젖는 것은 아닌가 봐요.


여튼저튼 결론은, 여러분!

우리는 향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향기로 사람을 사랑하고, 향기로 먹고 사는 아로마테라피스트입니다.

그러니 팬데믹의 기간동안 조심 또 조심하여 지혜롭게 이 시간을 겪어내시길 당부드립니다.


늘 드리는 비유지만 '떨어지는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는 내가 먼저 써야한다'는 것을 잊지마세요.

그래야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사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먼저 돌보고 책임지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의 의무입니다.

각자의 양심과 염치를 믿으세요.

내 양심과 염치가 책임과 이기심의 올바른 구분점이 되어줄겁니다.

남이 그러던가 말던가 관여하지 마세요. 그는 그의 인과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의 인생입니다.


또한 돈은 당장에 줄이고 빼고 포기하는 과정이 뼈를 깍는 듯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좀 걸릴뿐 그래도 어케어케 살아집니다.

우리를 진짜 환장하게 만드는 것들은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들입니다.

양심의 손전등과 염치의 신발을 신고 있다면 발을 더럽히지 않고 어둔 밤길을 걸으면서 안전하게 통과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특별한 시기를 자기자신과 삶, 인간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 해안을 얻게되는

오히려 알찬 시간으로 보내시길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저도 이제 쭉 맘 편히 놀게 생겼으니 (흠... ) 더 잘 놀 수 있도록

스스로 자유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사랑하며 자기사랑의 자가발전을 이어나가겠습니다.

힘낼께요^^


모두 건승하세요!


추신)

공유하고 싶은 기사들이 있어 블러그에 링크해두었습니다.

참고하세요^^

https://toriekim.blog.me/2220763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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